설교 전문
요나의 기도와 보혈의 능력
여백의 시, 물고기 뱃속의 기도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늘의 영광과 하늘의 지혜와 하늘의 공급, 그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 보혈에 담아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보혈을 대할 때에, 잔을 마실 때에, 이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막힌 담도 없고 하늘의 영광과 은혜를 맛볼 수 있고 그 사랑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 이 시공간에 하늘의 임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여전히 살아 계셔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의롭다 부르시는 예수님, 주님의 부르심에 화답하여 믿음으로 이 잔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악을 덮으시고 허물을 사하시고 온전케 하실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담대함과 선한 양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피로 말미암아 씻김을 받아서 주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능력을 얻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늘의 영광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그 은혜를 구할 수 있도록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주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아멘.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아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아멘. 아멘.
우리 함께 교독문으로 함께 화답하며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교독문 45번 시편 103편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환영하고요.
우리 함께 말씀 보겠습니다. 말씀은 드디어 이제 요나서 2장으로 넘어갑니다. 요나서 1장을 네 번이나 했어요. 그렇죠? 요나서 2장도 한 서너 번 할 것 같아요. 이게 문학 작품이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문학 작품이라서 굉장히 깊어요. 요나서 오늘은 1장 17절부터 읽겠습니다. 17절부터 2장 10절까지 제가 한 절, 여러분이 한 절,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읽겠습니다.
1장 17절부터 읽어야 합니다. 이게 히브리어 성경에는 원래 이게 2장 1절이거든요. 네,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 밤낮을 보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고난을, 고난당할 때 내가 여호와께 불렀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지옥의 깊은 곳에서 내가 도움을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곳 바다 한가운데에 던지셨습니다. 그러자 물결이 나를 에워싸고 주의 파도와 소용돌이가 나를 덮쳤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내가 주의 눈앞에서 쫓겨났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주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물이 내 영혼을 에워싸고 심연이 나를 삼키고 해초가 내 머리를 감쌌습니다.
산의 뿌리에까지 내가 내려갔습니다. 저 땅이 나를 오랫동안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목숨을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셨습니다.
내 영혼이 쇠약해져 갈 때 내가 여호와를 기억했습니다.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으며 주의 거룩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쓸모없는 우상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사의 노래로 주께 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내가 서원한 것을 내가 다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령하셨고 물고기는 요나를 땅으로 토해 냈습니다.
아멘.
여기 다섯 단어로 쓰여진 글이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래 그럴게
나도
응
그래
여러분, 이 시의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김용택 시인이라는 시인이 쓴 〈달〉이라는 시입니다. 여러분, 이게 시라는 게 믿어지세요? 네, 다섯 단어로 된 글자. 자, 이 그냥 긍정만 하는 그런 단어들이 있는 그 뒷면을 상상해 보면 왜 이게 제목이 〈달〉이냐면, 달이 환한 밤하늘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그래"라고만 해도 서로 통하는 그런 그리움, 그리고 사랑, 이런 걸 느낄 수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분위기를 알면 "그래 알았어. 그래 그럴게. 나도. 응. 그래." 이게 느낌이 확 오지요. 근데 이 단어만 놓고 보면 아,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 같잖아요. 그렇죠?
자, 이거를 우리가 시의 여백의 미학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보통 시나 서예, 혹은 사진, 그림 같은 예술을 볼 때는요, 여백을 통해서 어떤 강력한 심상이나 이미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쓰여진 것보다 그 쓰여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말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거예요.
구약에는 여러 장르가 있는데, 이 장르 중에 특별히 이 시편이나 아니면 예언자들 중에 선지서 중에 이런 시적인 문구로 기도로 올리는 그런 시들은 그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는 여백이 우리한테 더 어떻게 보면 감동을 준다라는 얘기예요.
자, 우리가 읽은 이 요나서 2장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 동안 있으면서 기도드린 이 기도는 시입니다. 시예요, 시. 예언서이면서 동시에 시라는 거죠. 이게 우리한테 어떤 의미를 가져오느냐? 이게 오늘 우리가 풀어야 될 숙제입니다. 숙제라기보다도 도대체 이 요나 선지의, 선지자의 이야기를 우리가 다섯 살짜리 유치원 혹은 주일학교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여기에 이렇게 긴 시로 된 기도문을 넣은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뭘까? 왜 하나님은 요나 뱃속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그 기도를 굳이 여기다가 적게 만드셨을까? 그가 고난 가운데 기도했던 그 기도를 우리가 보고 듣고 이스라엘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했을까? 여러분 그걸 상상해 가면서 여러분이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라고 생각을 하시면서 한번 이 시를, 이 기도를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특별한 환경
자, 그런데 이 예언서이죠. 예언서이니까 우리에게 말하는 게 있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게 있죠. 또 하나는 기도문입니다. 기도문이니까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되는 어떤 그 내용이 있겠죠. 그걸 우리가 생각하면서 보자 이 말이죠. 그래서 먼저 1장 17절, 그다음에 2장 10절. 이 이야기 구조 안에 갇혀 있는, 혹은 담겨 있는 시, 기도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1장 17절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도대체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 기도하고, 왜 하나님께서 이 기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가? 이스라엘이 지금 여기 상황 가운데, 요나가 이스라엘의 대표로 그 상황 가운데서 기도했었던 그런 이유가 뭘까, 내용이 뭘까, 이거를 보자는 거죠.
1장 17절 한번 같이 읽을까요? 시작.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 밤낮을 보냈습니다.
자, 여기서 이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다. 1장의 핵심 단어 중에 하나가 이 '큰'이라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큰 성읍 니느웨, 하나님은 큰 악이 가득 차 있는 그 니느웨보다 크신 분이다. 요나가 도망갔을 때 하나님께서 뭘 보냈습니까? 큰 바람을 보내시고, 큰 폭풍이, 물결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이방인 선원들로 하여금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죠.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큰 물고기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다 주관하고 계시는 창조주이시면서 통치자시다라는 게 이 단어에 나타나 있는 거죠.
근데 그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준비하셨다라는 게 중요해요. 준비하셨다. 이게 오늘의 핵심 단어입니다. 여러분 다 잊어버려도 요거는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바닷속에 던져진 요나를 위해서 물고기를, 요나가 그 바닷속에 던져질 것을 아시고 미리 물고기를 준비하신 거예요. 이 준비했다라는 말을 잘 기억하십시오. 나중에 보면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뭘 준비하십니까? 요나가 4장에도 또 기도를 해요. 근데 2장의 기도와 4장의 기도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요. 근데 요나가 기도할 때 또 뭘 준비하십니까? 벌레를 준비하시죠. 아니, 벌레가 아니라 박넝쿨을 준비하시고, 벌레를 준비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고, 햇볕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동시에 이 기도하는 사람들 안에, 고통 가운데 있는 이런 사람 안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뭔가를 준비하시면서 깨닫게 하시는 거죠. 자, 우리가 기도가 그러면 어떤 환경 가운데 드려져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환경 가운데 드려져야 된다라는 게 이제 첫 번째예요.
그래서 물고기를 준비하셨는데 요나를 삼키게 했습니다. 근데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 삼 일 밤낮을 보냈습니다. 자, 그 환경이 뭐냐? 물고기라는 거죠. 이 물고기가 앞에서는 큰 물고기, 우리 원어로 읽으면 앞에서 큰 물고기는 남성이에요. 근데 뒤에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다 그랬을 때 그 뒤의 물고기는 여성이에요, 여성.
예. 우리 암컷과 수컷이 있잖아요. 이게 왜 갑자기 여성이 되느냐? 제가 예전에 우리 히브리어로 이걸 같이 공부하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아주 기가 막힌 대답을 했어요. "요나를 삼켰기 때문에 갑자기 남성에서 이렇게 된 게 아니냐? 바뀐 게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가만히 보니까, 그래서 제가 주석서를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그런 해석이 있더라고요, 정말. 근데 그게 의도적이라는 거예요. 이 요나서에서 이 저자가 남성 물고기를 요나를 받아들임으로써 여성 물고기가 됐다는 것은 여기에 그 뱃속이라는 게 사실은 자궁하고 똑같은 말입니다. 그렇죠. 그게 무슨 얘기냐면 물고기 뱃속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자궁과 같은 어떤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그런 중요한 요소 환경이었다라는 거예요. 예?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까 이 물고기 뱃속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폭풍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라는 거죠. 여러분, 이 앞에서 보면 폭풍 가운데 하나님이 요나가 타고 있는 배 밑바닥에 들어가게, 들어갔잖아요, 그렇죠, 요나가. 그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풍 가운데 있는, 난파당하지 않고 완전히 죽지도 않는 그러나 그렇다고 그래서 살지도 않는 폭풍 가운데 계속 떠도는 배, 거기서 뭘 해야 됐습니까? 선원들이 일어나서 부르짖잖아요. 그 선장이 와서 "일어나 너의 신께, 너의 하나님께 외쳐라. 부르짖으라."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요나가 안 하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나를 들어 던지라." 그랬더니 이제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무슨 얘기냐? 우리 주변의 환경의 폭풍과 인생의 여러 환난과 어려움과 이런 것들을 만나잖아요. 근데 그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게 있다는 거예요. 뭐예요? 배를 예비하시고 물고기 뱃속을 예비하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에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이 기도원 간다 그러고, 교회에 특별한 기도, 새벽기도 간다 그러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게 맞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이 특별하게 준비하시는 그 장소, 그 시간이 있다라는 거예요.
자아가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삼 일 밤낮
거기서 뭘 해야 되느냐? 3일 밤낮을 보내게 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나중에 복음서에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이 불신하는,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 이 세대에게 보일 표적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다." 3일 밤낮,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얘기했겠죠, 물론. 근데 여기에 3일 밤낮이라는 게 이게 중요합니다. 왜냐면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3일 밤낮은 하나님과 만나는 그런 시간인데 자아가 죽는 시간이에요, 말하자면. 옛것이 벗겨지고 새것이 드러나야 되는 시간이에요. 물고기 뱃속에 요나가 3일 밤낮이 있는데 요나의 이전의 자아가 벗겨지고 새로운 자아를 입어야 되는 순간이라는 거죠. 그게 바로 기도의 시간과 장소라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러한 시간과 장소라는 겁니다.
여러분, 출애굽기에 보면 출애굽기에 이 애굽을 탈출할 때 뭐라고 합니까? 모세가 바로한테 가서 "우리가 사흘, 3일 길을 걸어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리라."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홍해를 건너고 나서 어떻게 하죠? 3일 밤낮을 걸어서 시내산에 도착을 합니다, 그렇죠. 그때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 3일 밤낮, 홍해를 건너서 3일 밤낮을 갔다는 게 뭐예요? 이전에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노예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새로운 시민권, 새로운 백성의 정체성을 입는 시간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3일 밤낮 동안 그 메마른 땅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이전의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의 시내산의 앞에서 서서 무슨 말씀을 듣습니까? 19장에 도착해서 무슨 말씀을 들어요? "너희가 이제 나의 세굴라, 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었다." 할렐루야. 노예가 아니라 이제 보배로운 백성이 되는 그 3일을 지내야 됐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온전한 계시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3일 밤낮을, 이게 독특한 표현입니다, 밤낮을 광야 가운데 걷게 하셨단 말이에요, 돌리게 하셨단 말이죠.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고난 가운데 있게 만드시는 거예요. 기도하게 만드시는 거죠, 그렇죠.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만드신 겁니다.
여러분, 이 3일 밤낮은 또 있습니다. 뭐가 있죠?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99세에 이삭을, 이삭을 바치잖아요, 그렇죠, 낳고 100세 때 이삭을 바치잖아요. 그때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이제 사라한테 얘기 안 하고 주섬주섬 아침 챙겨가지고 하인들 데리고 이제 길 걷습니다. 얼마나 걸을까요? 3일 밤낮을 걸어서 어디에 도달합니까? 하나님의 산에 도달해요. 모리아산이라고 그러죠. 지금 있는 시온산이라고도 얘기를 하는데, 거기에 도달하면서 멀리서 시온산이 보이니까 거기서 하인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저 산에서 경배하고 다시 돌아오리라." 그건 무슨 얘기예요? 이전에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옛 아브라함의 모습을 벗고, 이삭을 죽여야 되잖아요, 그렇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너의 사랑하는 너의 독자, 네가 사랑하는 그 아들을 바치라." 그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자아의 죽음인 거죠.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할렐루야.
3일 밤낮을 뱃속에서 이 요나가 기도했다는 것은 자기가 이전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의 시간 가운데 준비하시는 물고기 뱃속과 같은 시공간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우리가 3일 밤낮이라는 이 상징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이전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것을 입는 것, 그것이 곧 기도다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게 바로 기도의 특권이고 기도의 영광입니다. 아멘.
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폭풍 가운데 빠져 있는 요나에게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삼키게 하셔서 뱃속에 들어가게 하셔서 3일 밤낮을 보내게 하신 것, 이게 영적 죽음을 얘기하는 거죠. 요나는 실제 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와 비교해 보겠지만, 요나는 영적으로 죽었어야 되는 거예요, 사실. 그러나 이제 여기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것까지는 안 가죠. 어쨌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특별한 공간에서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전의 추악한 모습들, 죄악들, 나의 성향들, 이런 것들이 죽음을 통과하는 것처럼 벗겨져 나갈 때 물고기가 2장 10절에 보니까 뭐라고요? 토해내는 것처럼 이제 이전 것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 아멘.
저는 이것이 특별한 어떤 시간에서만, 특별한 우리가 인생의 고난의 환경에서만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라면 누구든지 이런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길이 열렸다는 것을 믿고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옛것을 버려버리시고, 옛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사람을 입는 자.
관계에 기초한 부르짖음과 응답의 확신
자, 그러고 나서 이제 이 우리가 이제 배워야 되는 게 요나의 기도죠. 요나는 이제 기도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자, 요나가 기도할 때, 요나가 간구하는 기도는 여기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거의 시편의 용어입니다. 모범적인 답안인 거예요. 이스라엘의 모범적인 기도, 혹은 모범적인 이스라엘인이라면, 선지자잖아요. 성경을 잘 알고 있고 말씀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자로서의 모습으로서의 기도라는 거죠. 근데 사실 이 2장에 요나의 기도가 여기에 기록된 이유는 뭐냐면 이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기도의 특권을 요나가 이용하는 거죠. '아, 이 정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 정도는 이스라엘이 기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겁니다.' 그래서 요나가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거죠. 요구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과 요나 사이의 관계가 곧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 근거해서 기도하라 이거죠. 그래서 이방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과 요나가 기도하는 게 차원이 다른 겁니다. 그것을 먼저 보자는 거죠. 자, 이스라엘의 기도의 모범을 보자. 우리가 이 정도로 기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우리에게 허락해주셨다. 이것 이상의 기도를 할 수 있다. 최소한의 기도의 특권을 우리한테 허락해주셨다. 그게 바로 요나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자, 그래서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자, 1절 보십시오. 2장 1절 보니까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 이게 첫 번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는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거죠. 기도의 대상을 요나는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성경에 보면 "그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여러분, 기도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인 것을 믿고 기도하십니까? 이게 관계가 필요한 거예요. 제가 항상 얘기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저 알아요. 문제는 그분이 저를 모른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잖아요.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모를 때 이거는 기도가 이게 안 되는 거죠. 그냥 지식적으로 깨닫는 거예요. 기도를 이제 문자적으로 읽으면서 기도의 신앙을 이렇게 살펴보면, 이 기도의 모범을 살펴보면 먼저 첫째는 하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인격적 대상으로 부른다는 거예요. 나의 하나님, 6절에도 보니까 뭐라고 그래요?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여러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알고 기도하고 그 관계를 기초해서 기도하는 것, 고난 가운데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 할렐루야. 여러분, 이게 특권인 거예요.
여러분, 무신론자의 허무함이 뭔지 아십니까? 무신론자들은요, 자기는 신이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다, 자기는 그런 것이 없다고 이 세계가 그냥 물질로 돌아가고 돈이 전부다라고 믿지만 실제 어떤 아름다움이나 감동이나 피조계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이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멋진 경치에 압도당하고 위엄에 찬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는데, 그 감동을 받은 것을, 감격하는 것을 누구한테 돌려야 되는지 그 대상이 없다는 거죠. 그게 허무한 거예요, 그게. 그러나 여기 뭐예요? 지금 이 요나는 고난당할 때 자기가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거예요. 자기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특권.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내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라는 것이 그냥 뭐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뭐 다치거나 아니면 배고프거나 그러면 주로 누구한테 달려옵니까? 엄마한테 달려오잖아요, 아빠한테 달려오잖아요, 그렇죠, 부모한테 달려오잖아요. 마찬가지로 요나가 거기서 지금 자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거예요, 기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겁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여기서 이 강조점이 바로 "그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2절에 보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고난당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불렀더니," 여호와를 불렀다. 고난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망치다가 선장과 선원들의 어떤 그런 모범을 보고서도 여전히 기도하지 않았다가 물속에 빠지고 거의 죽을 것 같은 그런 순간에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드디어 기도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여러분, 이런 기도가 어떻게 보면 고난당할 때마다 기도하면 어떡하냐, 미안하잖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고난당해도 기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고난당할 때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기다리시고 고난의 이유를 알려주시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성장을 하든지 돌파를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시든지 아니면 고난을 계속 당하게 하면서 욥처럼 그 고난을 통해서 뭔가를 하나님이 증거하기를 원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목적과 이유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부르시는 시간인데 고난이라는 것이. 그것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내가 내 고난의 의미를 결정하고 내가 내 고난을 스스로 해결하겠다 그렇게 되면 이제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고난을 풀어보려는, 이게 종교죠. 그런 식으로 가는 거죠.
지금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라는 게 고난 가운데 기도했다는 게 아, 그건 당연한 거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이 고난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다는 겁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간절히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지옥의 깊은 곳에서 내가 도움을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아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거예요. 그럼 무슨 얘기냐? 우리에게, 우리 존재 자체에 먼저 반응하시는 거예요.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마치 우리 아기들이 말을 배우면서 옹알이하는 거하고 비슷해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뭐가 필요한지 아세요.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 아이들이 옹알이할 때 얘가 지금 배가 고픈지 아니면 짜증이 나는지 기저귀를 갈아야 되는지 엄마들은 다 알잖아요. 근데 아기들은 그 말을 막 하면서 그 말 안에 자기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힘든 거를 막 불평하잖아요, 그렇죠. 울기도 하고 아예 말도 안 하고. 우리가 그런 거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뭐가 필요한지 아는데 우리의 기도의 언어가 우리가 필요한 것과 항상 맞지 않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뭐에 먼저 응답하시냐 하면 저와 여러분의 존재에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아시고 보시고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에요. 아멘.
여러분, 이게 지금 요나가 기도할 때 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고 이스라엘이 확신하는 기도의 그 확신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응답하시는 것, 내 소리보다는 나에 대해서 먼저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 이게 바로 기도의 확신입니다. 할렐루야.
자, 그렇기 때문에 요나는 이 기도 가운데 이 고난 가운데 기도할 때 이 하나님이 자기에 대해서 반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기도했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요나의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이스라엘의 기도의 특권이 바로 이겁니다. '아,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는 그 내용보다 나에 대해서 먼저 아시는구나. 나에 대해서 먼저 반응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반응하시는구나. 일단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존재에 대해서 반응하신다.' 아멘.